트위터에 적었다시피 얼마 전에 담석 제거 수술을 받았었어요. 이게 첫수술이라 신기한 것도 많았고 상상하지 못했던 괴로움도 많았어서ㅇ>-< 이 수술이 인생 마지막 수술이길 그래서 훗날 아 수술... 받긴 받았는데 어땠었지...? 할 때 기억을 되살리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적습니다.

 

+제가 겪은 증상에 대해 그대로 적어놔서 비위를 자극하는 내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수술 전

 

 일단 제 수술 전 상태는 운동부족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2017년 겨울쯤 등통증과 위장팽만감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고, 소화불량인가 싶어 버텨보려는데 어느날 구토가 너무 심해져서 병원에 갔어요. 위내시경을 받아본 결과 역류성 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식도에 살짝 기스가 나긴 했지만 위장은 깨끗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약물 처방을 받고 증상은 곧 호전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019년은 9월부터 비슷한 증상이 시작됐어요. 병원에 갔더니 또 역류성 식도염 진단을 받았습니다. 증상도 똑같아서 저도 그렇구나 했지요. 그런데 이게 증세가 점점 심해지는 거에요! 처음엔 식단 관리에 문제가 있나, 위장의 소화력은 떨어졌는데 과식을 해서 그런가, 싶어서 약을 바꿔보기도 하고 식단을 바꿔보기도 했지만 별 차도가 없었습니다. 결국 11월 초쯤 하루걸러 한 번씩 하루종일 구토를 하는 지경에 이르렀어요. 먹은 걸 다 쏟아낸 뒤부터는 위액을 토했고요. 물 한 모금만 마셔도 구토끼가 심해져서 물조차 조심조심 마셔야 했습니다. 구토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구역감에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고요. 오타쿠가 그 좋아하는 게임이며 덕질도 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지요.

 결국 다시 한 번 위내시경 검사에 혈액검사에 초음파검사까지 받아보았고, 초음파 검사에서 쓸개에 담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크기가 제법 크다는 것(보통 3cm면 증상이 없어도 제거 수술을 받는다고 하는데, 제 건 2.8cm를 살짝 넘는 크기였다고 해요)이 밝혀졌습니다. 크기가 크다는 점, 그리고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고역이 큰 점 등으로 수술을 추천받았습니다. 그리고 혈액검사 결과 건강검진 때는 멀쩡했던 간수치가 요동쳤다고 해서 약을 또 처방받았죠. 이게 우루사 200mg이었는데, 그에 대해서는 아래에 좀 더 적겠습니다.

 그 뒤 약을 먹고 식사를 조심하면서 증상은 꽤 나아졌습니다. 배고픈 게 느껴질 정도가 되었고 식사량도 조금씩 늘었죠. 그래도 식사량 자체가 워낙에 줄었고(너무 양이 줄다보니 불안해서 칼로리를 계산해봤는데 하루 천 칼로리도 겨우 소화시키더라구요) 약을 달고 다니는 생활이나 구토로 하루종일 행동불능이 되는 사태는 막고 싶어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어요. 찾아보니 간단한 수술이고 회복도 빠르다고 해서 마음도 편해졌고, 고민할 건 수술 비용과 수술할 병원 정도 뿐이었어요.

 

진료와 수술 예약

 

 병원 후보를 몇 군데 추린 뒤 당장 다니던 내과부터 가서 진료기록과 진료의뢰서를 받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이 병원에 예약도 하지 않고 왔다는 소리에 걱정하면서 진료의뢰서는 1주일 지나면 효력이 사라지니 다시 받으러 오게 될 수도 있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도 설마 예약하는 데 그렇게 오래 기다리겠어? 하고 생각해둔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전화를 걸었는데 진료 예약은 6일 뒤에나 가능하다는 대답이 돌아오더라구요... 두 번째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어보니 거긴 이틀 후 진료를 보는 게 가능하다고 해서 결국 그곳으로 정했습니다. 그 곳도 정확히는 예약은 이미 꽉 찼지만 미리 말씀드려둘테니 오셔서 외래진료를 보세요, 하는 식이었어요.

 가서는 초진이라고 진료 절차를 밟았죠. 외래 진료 식이라 많이 기다리게 될 걸 예상했는데 미리 전화를 해두고 가서인지 빠르게 수납할 수 있었습니다. 진료기록을 제출해서 복사하고, 외과에 진료의뢰서랑 당시 먹고 있던 약 처방전 등등을 제출했어요. 의사선생님을 뵈니 역시 담석이 크니 수술하시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수술 일정을 잡았습니다. 이것도 처음엔 수술실 일정이 꽉 차서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했는데, 운이 좋아 1주일 이내로 수술 일자를 바꿀 수 있었어요.

 그리고 수술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한 검사들을 했어요. 소변검사, 혈액검사, X레이, CT촬영 등등. 사실 CT촬영을 한다는 소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수술 바로 전날 하는 줄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별 생각없이 아침을 먹고 갔다가( mm) 오후 4시까지 금식하며 기다려야 했습니다. CT가 어떤 건지 정말 궁금했었는데 지금 당장 기억나는 게... CT 촬영 때 약물을 넣기 위해 꽂는 바늘이 엄청 아프고... CT 찍기 바로 직전에 물 한 컵을 주시는데 마시라는 소릴 못 듣고 있다가 CT실 열리고 나서 헐레벌떡 마신 거에... 조영제가 몸을 돌았더니 엄청 후끈했더라는 것 정도만 기억나네요. 그리고 CT 들어가는 입구 쪽에 아이콘으로 숨 들이마쉬세요 내쉬세요 표시가 있었던 것도요. 그 막대기 같은 곳에 누워서 양 팔을 위로 들어올리면 들락날락하면서 찍는데 생각보다 금방 찍었어요. 5분도 채 안 걸린듯.

 아무튼 검사 결과는 수술 가능! 다만 생리 끝자락이었던 터라 소변검사에서 염증이랑 혈액반응이 나와서 좀 불안해하셨었어요. 이후 소변검사는 한 번 더 할 줄 알았는데 그냥 그대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입원

 

 그 뒤 짐을 바리바리 챙겨서 입원했습니다. 짐으로 챙겼던 건 속옷이랑 수건 몇 장, 휴지들(일반 화장지와 물티슈를 둘 다 챙겼어요), 당시 복용하던 약, 슬리퍼 정도였어요. 그 외에 병원에서도 시간을 때울 수 있을 만한 폰이나 기타 자질구레한 것들.

 약 덕분인지 상태는 점점 좋아져서 입원할 때는 몸 상태가 제일 괜찮았어요. 여전히 병원밥을 다 먹지 못하고 반그릇 정도는 비워야 했지만... 입원해서는 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덤으로 10월달 건강검진한 이후로 거의 6kg은 떨어진 몸무게를 보고 경악하기도 하고) 간호사 선생님께 이전에 수술받은 적 있는지, 다른 병이나 알러지가 있는지, 특정한 질환에 대한 가족력이 있는지, 현재 복용 중인 약들은 무엇인지를 꼼꼼히 보고한 다음 마취동의서와 수술동의서에 사인했습니다. 수술 동의서는 의사분이 오셔서 대략 이런 수술이다 하는 걸 설명해주셨는데, 마취동의서는 수술실 근처 방으로 다음날 수술받을 환자들이 우르르 내려가서 강의듣듯이 유의사항을 듣고 사인하고 나왔어요.

 그리고 수술 때 필요하다는 물건들을 구매했어요. 마스크...?(기억이 확실하지 않음)와 거즈였는데, 거즈는 수술 후에 한동안 물을 마실 수 없어 입을 축이는 용도로 썼습니다. 간호사실에서 추천해주시는 대로 세묶음을 샀는데, 한묶음만 사도 되었을 듯... 가격이 그리 비싸진 않았지만요. 마스크는 생각보다 가격이 셌는데 만약 수술 때 안 쓰게 된다면 환불도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다만 멸균상품이다보니 되도록이면 봉지에서 꺼내지 말고, 영수증을 꼭 챙겨서 가져오라고 하셨어요.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은 괜찮았어요. 사실 5인실이라 까다로운 사람들과 같은 방이 될까봐 좀 걱정했는데 다들 성격이 좋으셨고 특히 한 분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 입원하고 있는 내내 참 감사했습니다. 또 수술이 보통 통증이나 염증이 없으면 뒤로 미뤄진다고 해서 저녁 늦게쯤 받을 줄 알았는데 아침에 제일 일찍 받게 된 점도 좋았고요. 간호사 쌤이 몸에 아마 수술 부위..? 혹은 사유...? 를 적어주신 뒤에 이제 수술 후 통증만 잘 견디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하며 행복하게 잠을 잤지요.

 

수술 당일

 

 수술에 대한 긴장 때문인지 일찍 잠을 깨서 수술 때 사용할 큼직한 바늘을 꽂고(사실 조금 회복되자마자 놀 생각이 만만해서 왼손에 꽂으면 안 되냐고 여쭤봤는데, 담낭이 몸 오른쪽에 있어서 그런지 오른팔에 꽂아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항생제에 거부반응은 없는지 체크했어요. 몸에 금속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고 몇 번씩이나 체크하시더라고요. 머릴 묶고 있던 고무줄에 금속파트가 있었는데 요것도 있으면 안 된다고 하셔서 노란 고무줄도 빌렸고요. 수술 가운은 대충 통짜 가운을 한쪽 면만 반으로 쭉 갈라놓은 것 같은 생김새였어요. 줄들이 많이 달려있어서 어떻게 입어야 할지 헷갈렸는데 평평한 판이 앞으로, 묶는 곳이 뒤로 가게 입어야 하더라고요. 이건 적당히 걸치고 있으니 간호사쌤이 매무새를 다듬어주셨습니다. 가운 안에는 아무것도 입으면 안 된다고 해서 모조리 벗고 엉덩이 주사를 두 방 맞은 뒤 이동식 침대에 실려 병실 복도에서 잠시 대기. 그 뒤 수술실로 이동했습니다.

 수술실을 보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졸려서 그랬나 약간 남일 같았어요. 수술 중에 움직이지 않도록 팔다리를 묶고, 몸에 금속이나 매니큐어/패디큐어 등이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하고, 마취제 들어갑니다~ 소리 듣고 나서 몇초 지났는지 셀 생각도 못 하고 기절.

 정신이 들어보니 여전히 수술실인 모양이었어요. 몸에 누가 손을 대고 있다는 감각은 있는데 몸이 조금도 움직이질 않아 좀 무서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아마 봉합 마무리 단계였던 모양. 그 뒤 한 번 더 기절했는지 의식이 천천히 각성한 건지 잘 구분이 안 되지만() 그 다음 기억은 입이 덜덜덜 떨렸다는 거에요. 추우세요? 하고 물어보셔서 그렇게 춥진 않은데 몸이 엄청 떨려요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가 엄청 아팠어요. 이건 수술 전에 배에 가스를 집어넣는데 그 가스가 어깨까지 방사통을 일으킬 수 있다는 안내를 들은 뒤라 뭔지는 알았지만 진짜 너무 아파서() 진통제 좀 달라고 했고요.

 그리고 이번엔 진짜 의식을 잃었던 거 같은데 다음 기억은 이동식 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옮겨지던 기억이네요. 오른팔엔 링겔이 꽂혀있고요. 그리고 6시간동안 주무시면 안 되고 아프면 진통제 더 넣어달라고 말하란 이야길 들었어요. 이 때쯤부턴 슬슬 아픈 것도 참을만해지더라구요. 스스로 몸을 일으키긴 아픈데 팔다리는 꼼지락꼼지락 움직일 수 있는 정도? 다만 6시간 동안 안 자는 게 고역이었지요. 마취 후유증인지 평소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깨서 그런지 계속 졸리더라구요. 폰으로 게임도 하고 트위터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사실 중간중간 꼬박꼬박 졸았지 싶습니다......

 이 땐 몸이 엄청 빨리 회복되는 게 스스로도 느껴질 정도였어요. 6시간이 지날 무렵엔 몸을 야악간 들어올리는 정도도 가능하더라고요. 간호사쌤이 왔다가 앗 엄청 멀쩡하시네요; 하고 놀라셨을 정도에요. 그래도 역시 스스로 몸을 일으키는 건 힘들어서 소변을 보는 건 너스콜의 힘을 빌려야 했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데에 그 정도로 배에 힘이 많이 들어갈 줄은 몰랐어요. 변기에 일어나고 앉는 것 정도는 아파도 참을만 했고요. 그 뒤엔 너무 오래 누워있기도 거시기해서 병동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앉아있기도 하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아 그리고 담석도 받고! 2.8이라고 들었는데 애가 생각보다 크더라고요. 자잘한 부스러기들은 따로 챙기기도 거시기해서 적당히 덩어리진 애를 주신다는데, 전 엄지손가락 한 마디 만한 큰 덩어리 하나 새끼손가락 1/4마디 정도 되는 작은 덩어리 하나를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이 오시더니 생각보다 쓸개가 많이 부어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수술 자체는 잘 끝났고 환자분 상태 보니 회복도 빠르다고 당장 저녁부터 식사하실 수 있겠고 내일도 퇴원하실 수 있겠다고 하셔서 기분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이젠 고생 끝 행복 시작이구나! 하지만 그 받은 식사는 도저히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 못 먹고 물렸습니다...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입맛이 영 없더라구요.

 

 수술시 절개한 부분은 배꼽, 오른쪽 옆구리, 명치 부근이에요. 의료용 본드로 봉합하고 그 위에 하얗고 넙적한 밴드 같은 걸 붙였는데, 이 의료용 본드라는 게 의사선생님도 딱지같은 역할이라고 설명하셨지만 감촉도 두껍게 내리앉은 딱지 느낌. 옷을 입고 있으면 바지 선이 자꾸 스쳐서 벗겨지는 게 아닐까 조금 신경쓰입니다.

+이 의료용 본드는 수술 후 10일 정도 지나자 모두 떨어졌어요. 그 전부터 옷에 쓸려서 조금씩 떨어지기도 하고 중간이 깨져서 달그락거리기도 했고요. 불안해서 최대한 덜 쓸리게 하려고 했는데 10일쯤 지나자 다 떨어지더라구요.

 

구역구토

 

 수술 다음 날 아침까지만 해도 빠르게 방귀를 뀌고() 회복이 빨라서 오늘 퇴원하셔도 되겠단 소릴 들었는데... 문제는 아침을 먹고 나서부터였어요. 요 아침도 몇 술 못 떴어요. 그 몇 술 뒤부터 속이 계속 불편한데 이게 평소랑은 다르게 수술한 자리가 아파서 그런가? 근육이 땡기나? 소화가 안 되나? 구분이 안 되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운동을 해야 몸에 넣었던 가스가 빠진다고 들어서 병동을 한 바퀴 돌고 있었는데... 또 속이 뒤집혔습니다... 익숙한 구역과 구토의 연속이었지요. 구토를 하는데 수술자리가 땡기고 아픈 게 왜 그렇게 서럽던지ㅠㅠ

 의사 선생님 말로는 전신 마취 후에 가끔 이렇게 구역 구토 증상을 나타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퇴원 후에 검색해보니 아직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는 모양입니다... 퇴원을 할까말까를 고민하던 아침과는 달리 하루종일 끙끙 앓았어요. 밥도 하나도 못 먹고, 운동도 거의 못 했지요. 어거지로 병동을 조금 돌아보긴 했는데 거의 운동이 되지 않았을 길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 다음 날에서야 수술 후 통증도 구역질도 조금은 버틸만해져서 퇴원했어요. 여전히 구역질은 있었지만 구토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많이 안정된 상황이라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집까지 돌아와서 아무것도 안 먹기는 좀 그렇다고 생각해 사과를 먹고 쉬었죠.

 그 다음 날은 좀 괜찮은 것 같아서 아침을 쪼끔 챙겨먹고 약도 챙겨먹고 못 한 운동을 하러 나갔는데, 수술 직후에 운동을 거의 안 해서 그런가 가스로 인한 통증이 어마어마하더라구요ㅠㅠ 이쯤 되니 수술로 인한 상처는 몸 누웠다 일으킬 때나 허리 비틀 때 말곤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좀 걷다보니 왼쪽 옆구리가 아프고, 좀 걷다보니 오른쪽 어깨가 아프고... 걷는 것 자체도 빠르게 걸을 수가 없는데, 평소엔 너끈하게 걸어갔다 내려오는 1시간짜리 산책로를 반쯤 올라가니 거의 넉다운이 되더라고요. 쉬면서 올라갔는데도! 내려올 때는 정말 몇 발짝 걷고 쉬고 또 몇발짝 걷고 쉬고 하면서 내려왔어요. 그리고... 또 어김없이 구토파티가 열렸어요. 게다가 아랫배가 은근하게 불편하기까지... 이때쯤 근 한 달간 입으로 먹어서 아래로 배출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곤 마음이 급해져서 정신없이 원인을 찾아보다 처방받은 약 중 하나의 부작용으로 구역구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이게 우루사 100mg였습니다. 사실 수술 받기 전 상태가 한참 좋아질쯤 먹던 게 우루사 200mg이라 설마설마 싶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제거하고 싶어서 복약상담을 받기로 결정했지요. 약사 선생님께는 그 약으로 구역구토가 일어나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은데, 많이 힘들면 빼고 드셔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빼고 먹었더니 놀랍게도 속이 좀 편해졌어요...!

 물론 당장 편해지진 않았고 하루 정도는 더 구역질에 시달렸습니다. 트림이 구역질에 섞여나왔어요. 결국 오늘(수술 후 5일 뒤)에서야 속이 제법 많이 편해졌습니다. 여전히 트림이 올라올 때마다 불편하긴 하지만 전처럼 으 이러다 구토하는 거 아냐? 같은 압박감은 훨씬 덜하군요.

 

기타 불편함

 

 수술 후 5일 뒤인 오늘은 제법 많이 회복이 되었습니다. 명치 쪽이 아직 조금 아프긴 한데 아마 구토하면서 힘이 들어가는 바람에 다른 곳보다 상처가 아물 시간이 덜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이젠 허리를 비틀거나 운동강도가 높아질 때 정도만 아프네요.

 그리고 이건 수술 때문인지 제가 제대로 식사를 못 한 기간이 길어서인지 모르겠어요. 다만 전 수술 후에도 10일 정도는 제대로 일을 못했습니다. 구토도 문제였지만 몸에 힘이 많이 빠져서 그런지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금방 지쳤어요.

 

 가스로 인한 통증은...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이게 생각보다 오래가더라구요ㅠㅠ 그래도 점심과 저녁을 먹고 나서 최소 30분은 걸어주는 식으로 운동을 하다보니 이젠 제법 나아졌는데 걷다보면, 그리고 아마 운동 강도가 올라가면 아파져요. 아픈 부위는 제 경우엔 왼쪽 갈비뼈 제일 아래쪽이랑 오른쪽 어깨가 주로 아팠어요. 그 외에도 어깨랑 명치 등등 다른 곳도 조금씩 아프고요. 그래도 이것 역시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이젠 수술 전과 비슷한 속도로 걸을 수 있게 됐어요. 여전히 숨은 수술 전에 비해 빨리 차지만요.

 그리고 이건 가스로 인한 통증인지 조금 헷갈리긴 하지만 제 경우엔 한동안 등이 뻐근했어요. 자다가 뻐근해서 깰 정도. 다만 이건 식사량이 늘어나면서 괜찮아졌어요. 수술 후 보름 정도 지나자 편해졌던 것 같네요.

 

 또 하나 불편했던 게 소화불량... 다른 부분은 확실히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데 이 부분이 유일한 근심입니다. 소화불량으로 장기간 고생하기도 해서 더 신경쓰이는 것 같아요. 원래도 변을 띄엄띄엄 보는 편이기도 하고, 최근엔 먹은 걸 거의다 입으로 토해냈으니 나올 게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만... 변이 나와줬으면 좋겠네요orz 방귀가 나오면 소화기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하긴 하지만... 제가 원래는 트림쟁이가 아니라 방귀쟁이였거든요(tmi) 그런데 요즘은 몸에 가스가 차면 99%가 트림으로 나오는 느낌이라 방귀가 그리워요... 다음 외래진료 받으러 갈 때까지 변과의 상봉을 하지 못하면 진지하게 상담 받아보려 합니다.

 소화불량 때문인지 아직도 입맛이 없고 먹는 양도 깨작깨작인데 얼른 회복되길 바랄 뿐이에요.

+변비는 수술 후 10일정도 지난 뒤에 나아졌어요...! 처음 쌀 땐 어마어마한 고통이 있었으나 그 뒤론 무른 변이 나오는 중. 소화불량은 수술 후 약 20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좀 남아있네요. 식사량도 아직 전만큼 돌아오지 못했어요. 그래도 소화 가능한 음식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술 후 약 한 달이 지난 지금은 식욕이 거의 돌아왔습니다! 입맛이 조금 변한 느낌은 있어요. 밀가루나 튀긴 음식 먹으면 니글거리는 게 전보다 강하게 느껴지네요. 그래도 이젠 뭐 먹은 뒤에 더부룩한 느낌도 거의 없어요. 이젠 수술 자국이 남아있는 것 외엔 거의 증상 나타나기 전 컨디션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비용

 

 입원+수술비용은 건강보험 적용된 뒤 제가 지불해야 할 건 120만원 조금 넘었어요. 하지만 그 외에 수술 보조용 도구 사는 거나 검사비 등으로 40만원 정도 더 나간 것 같고요. 아까운 건 역류성 식도염인줄 알고 치료비로 써왔던 자잘한 돈들이네요.....! 물론 그 진료와 약들로 편안함을 얻었으니 어떻게 생각하면 아깝지 않긴 한데....!

+수술 후 검사비+약값으로 또 몇만원이 나갔고, 6개월 뒤에 다시 방문해서 검사를 받으라고 하니 그 때에도 몇만원이 또 나갈 것 같습니다. 총 170만 정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호드 위주

-캐릭터 위주

-설정이 틀린 곳이 있을 수 있음(mm )


△ 격아 시점 자캐 관계도


어둠의 문이 열리기 전


-로노미는 드레나이들이 아르거스를 탈출한 이후 태어났다. 철이 들고 나서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이 드레노어였고, 그래서 드레노어를 고향처럼 여기고 있었을 것.



2차 대전쟁


-와그나의 부모는 모두 순찰대였다. 2차 대전쟁 때 호드의 지원을 받은 아마니 트롤이 쿠엘탈라스를 침략했고, 순찰대로서 그에 맞섰던 와그나의 어머니는 걷고 뛰는 게 불편해질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이 부상이 계기가 되어 와그나의 가족은 실버문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렇게 이사한 집이 어린 시절 친구였던 치오르네 근처였고, 와그나와 치오르는 형제처럼 자라게 된다.

-치오르의 부모는 마법학자였고, 그래서 치오르는 어릴 때부터 마법에 관심을 갖고 배워옴.

3차 대전쟁


-다일라는 원래 로데론 사람으로 마법에 조금 재능이 있어서 마법부여 상점에서 배우면서 일하고 있었다. 상당한 미인이었고 스스로도 자신의 미모에 자신있어하고 있었지만, 스컬지에게 죽고 (몇년 뒤) 포세이큰으로 되살아난 뒤 시체와 다를 바 없이 변한 자신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음. 자살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그 뒤 마음을 바꿔 흑마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스컬지의 침략으로 치오르의 부모와 와그나의 아버지가 사망. 성인이 된지 얼마 안 된 와그나는 민간인 구출과 보호에서 큰 공을 세우며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태양샘이 오염된 뒤 청소년기 정도였던 치오르는 정신적인 충격+아직 미성숙한 신체 때문에 마나중독을 꽤 심하게 앓았다. 와그나는 그리 심하지 않게 넘긴 편.


-지난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기 때문에 근처에 살던 무난이 자주 돌봐주었다.
-무난은 일찍 아버지를 잃고 의술사인 어머니 슬하에 살았고, 지난에겐 어부 겸 사냥꾼인 부모가 있었다. 그러나 바다마녀와 쿨티라스 해병이 검은창 트롤이 살던 섬을 공격했고, 그 공격으로 지난은 부모를 모두 잃고 무난 어머니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무난은 원래 의술사가 되려 했지만 잘라제인의 타락을 보고 주술사로 진로를 틀었으며,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반쯤 독립하게 된다.

-지난은 원래 랩터 사육사가 되려고 했었고, 메아리섬으로 터전을 옮긴 뒤부터 본격적으로 랩터 사육을 돕고 있었다. 하지만 무난이 독립한 뒤 자신 역시 랩터나 키우고 있을 순 없겠다는 생각에 사냥 기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쪽은 거의 독학이었음. 지금 데리고 다니는 랩터는 어릴 때부터 지난이 키워온 개체로, 다른 랩터에 비해 작게 태어나 부모가 돌보지 않는 걸 지난이 거둬 길렀다.



오리지널


-무난, 록탄 호드 합류.
-어느 정도 성장한 무난은 메아리섬을 떠나 모험을 시작한다. 그러다 같은 퀘스트를 받았던 록탄과 우연히 함께 행동하게 되었고, 서로 도움도 되고 어느 정도 죽도 맞아서 그 뒤에도 쭉 같이 다니기 시작했다.



-로만, 카르요, 파르네쟈 얼라이언스 합류.
-카르요는 호드에게 남편과 동생 하나를 잃었고, 그 때문에 호드에 대한 적개심이 강한 편.


불타는 성전


-치오르, 와그나 호드 합류
-와그나는 스랄에게 실바나스의 서신을 전한 일행 중 하나였다.
-치오르는 마법학자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신도레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결정한다. 좋게 말해 그런 거고 사실은 그냥 실버문을 떠나고 싶었던 것.
-아웃랜드에서 치오르는 무난, 록탄 파티와 만난다. 셋은 필요에 의해 함께 다니기 시작했지만, 다른 종족을 대놓고 무시하는 치오르/다혈질인 록탄/은은하게 성격나쁜 무난의 조합이라 사이는 썩 좋지 않았다. 파티의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록탄은 홀로 사냥을 나가서 기분을 풀곤 했고, 점점 단독 행동이 많아지게 된다. 다만 치오르와 무난은 계속 부딪히면서 서로의 선을 파악하게 됐고, 다른 종족들과 자주 만나면서 치오르의 엘프중심주의도 조금씩 고쳐지기 시작한다.


-로노미 얼라이언스 합류
-로노미는 카르요, 파르네쟈와 함께 푸른가지 길드를 창단한다. 던전 등을 탐험하기 위한 목적. 푸른가지의 초창기 멤버들은 우연히 모두 여성이었고, 파르네쟈 등이 남성 신입을 받아들이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면서 결국 여성만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후 길드는 점점 커져서 약 40~60여명 정도 크기로 성장함.

-로노미는 오크들에게 드레나이가 학살당한 뒤부터 복수심과 증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라이언스에서 동료들과 만나면서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아웃랜드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마그하리와 지옥피 오크 등을 보고 측은함을 느낀 것을 계기로 용서는 하지만 잊지 않는다 스탠스로 돌아섰다. 카르요는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리치왕의 분노



-와그나는 스컬지가 다시 칼림도어와 동부왕국를 습격하기 시작했을 때 전사, 이후 죽음의 기사로 되살아났다.

-타토즈와 이바나(포세이큰 사냥꾼)가 만남. 처음엔 스컬지를 공략하기 위한 파티였지만 사냥하는 방식이나 성격이 잘 맞아서 둘은 금방 친해졌고, 이 뒤에도 종종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치오르는 가로쉬의 명령으로 다른 npc와 단둘이 정예 언데드 부대를 상대할 뻔 했다. 다행히 사울팽의 도움을 받아 살아났지만 이때부터 가로쉬에게 불만을 품게 되었다. 반면 록탄은 가로쉬의 자신감있는 태도나 전의 등을 보고 크게 감명받고 가로쉬를 존경하게 되었다.

-칠흑의 기사단이 자유의지를 되찾은 뒤 와그나는 치오르에게 연락해 다시 만났다. 하지만 아직 스컬지에 대한 트라우마가 남아있던 치오르는 와그나를 보고 혼란과 공포부터 느꼈고, 와그나 역시 그리움이나 반가움보단 부정적인 감정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고 생전과 같은 관계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체감했을 뿐이었다. 결국 와그나는 다시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선을 그었으며 이후에도 둘이 마주할 일을 최대한 피하게 된다.
-치오르는 와그나를 만나러 가고 록탄은 가로쉬의 기지에서 좀 더 일하고 싶어해서 혼자서 회색 구릉지를 돌아다니던 무난은 갇혀있는 드라쿠루를 발견하고 피의 맹세를 나눈 뒤 그를 도와줌. 결과는...



대격변


-지난, 트윅시, 마이브와 합류.

-마가타의 썬더블러프 학살 당시에 마이브와 가족은 해바위 야영지에 살고 있었다. 마이브와의 아버지는 그림토템 출신이지만 블러드후프 일족에 합류한, 어느 의미로는 배신자였지만 덕분에 참변을 피할 수 있었음.

-호드에 갓 합류한 트윅시와 역시 신병이던 마이브와는 같은 임무를 하다가 만났다. 고블린은 아무래도 덩치도 작고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인상이라 무시당할 때가 많은데, 다른 병사들과 달리 고블린이라고 무시하지 않는 마이브와를 보고 이거다! 싶었던 트윅시는 그 뒤 쭉 마이브와와 함께 행동하게 되었다. 마이브와는 마이브와대로 트윅시가 이것저것 조언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트윅시의 제안으로 치오르, 무난, 록탄, 트윅시, 마이브와 다섯 명이 불꽃가시 길드를 만들었다. 도움이 필요할 때 연락이 수월하도록 하는게 첫째 목적, 전문기술로 만들어낸 물건이나 재료들을 안정적으로 교환하는 게 두번째 목적이었음. 이후 인원이 조금 늘긴 했지만 비전투원을 포함해 10명 남짓의 소규모 길드로 운영되고 있음.
-그 동안 혼자서 꾸준히 사냥 기술을 연습해온 지난도 호드에 합류. 얘가 전투원이 될 거라곤 생각 못했던 무난은 상당히 놀랐다. 불꽃가시에도 가입했으나 평소엔 거의 혼자서 행동한다.
-가로쉬의 종족 차별적인 행동으로 록탄과 다른 사람들, 특히 무난과의 거리가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한다.


-삼카샤, 티요 합류. 둘 다 당해 푸른가지 길드에 들어갔다.
-삼카샤는 황금골에 살던 어떤 수완좋은 상인의 딸. 어머니는 오크의 손에 죽었고, 그 뒤 아버지는 엄마 잃은 딸이 불쌍해 딸이 하고 싶다는 공부는 다 시켜줬으나 그 딸이 자신이 집을 비운 사이 지하실에서 임프를 소환하곤 했다는 건 꿈에도 몰랐다.
-로만은 다른 사람을 챙겨주는 게 버릇인 인간이고, 삼카샤는 좋게 말하면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면 철없는 성격임. 둘은 던전 공략 중에 우연히 만났지만 자연스럽게 챙겨주고 챙김받고 불안해서 공략이 끝난 뒤에도 좀더 챙겨주고 하다보니 어느새 남매처럼 친해지게 됨. 로만은 이 연으로 푸른가지와도 연줄이 생기게 됐다. 처음엔 경계하는 길드원도 있었지만 나중엔 거의 명예 길드원 같은 취급을 받게 됨


-삼카샤와 지난은 가시덤불곶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서로 적의가 없음을 열심히 피력하다가 친해졌다. 서로 간단한 공용어나 잔달라어도 가르쳐줌.



판다리아의 안개


-록타나, 브리우 합류.
-치오르와 무난은 판다리아 원정 선봉대였지만 호드 비행선이 비취 숲에 추락하면서 서로의 생사를 모르게 된다. 치오르는 나즈그림과 합류했고, 무난은 근처를 헤매다가 티엔 수도원 쪽으로 올라감. 서로 툭하면 싸우긴 했지만 미운정이 들어있던 상태라 치오르는 상당히 걱정하고 불안해했다. 이후 언덕골에 도착하고 나서야 무난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시름 놨고, 그로부터 몇주 더 지난 뒤에야 다시 만났다. 이때부터 둘은 서로 어느 정도 마음을 터놓게 된다. 이제까진 자존심 때문에 서로를 종족명으로 불러댔지만 제대로 이름으로 부르게 됨.
-볼진이 가로쉬에게 암살당할 뻔했을 때 근처에는 치오르와 무난이 있었다. 무난은 드라쿠루에게 속은 기억 때문에 멈칫했지만 치오르는 기꺼이 볼진과 피의 맹세를 나눔.
-록탄은 판다리아 원정이 다소의 난관은 있어도 잘 풀려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길드원들에게 술을 사며 역시 가로쉬님은 대단하다니까! 이게 바로 호드지! 같은 소릴 하다가 트롤 거주지를 슬럼가로 지정한 건부터 볼진 암살 미수 건까지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하던 무난을 제대로 빡치게 해버린다.(다만 이 시점에서 록탄은 볼진이 암살당할 뻔 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둘은 완전히 갈라섰고, 길드원들 다수가 무난의 편이었기 때문에 록탄이 길드를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록탄은 그 뒤에도 쭉 가로쉬를 지지했다. 그러나 오그리마 공성전 때 가로쉬가 이샤라즈의 심장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혼란스러워했고, 재판에서 가로쉬가 달아나면서 완전히 실망해 호드를 떠나 방랑하기 시작한다.
-반면 록타나는 가로쉬 반대파였기 때문에 오그리마 공성전에도 참전했다. 불꽃가시와는 그리 나쁘지 않은 관계지만 가입은 하지 않음.



-마우마 합류. 로만의 소개로 푸른가지 길드에 들어갔다.


-테라모어의 비극 이후 삼카샤와 지난은 한동안 사이가 어색해졌다. 둘 다 이 우정을 끝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무법항에서 만나 서로 속을 터놓고 대화하게 되었고, 결국 얼라이언스와 호드 사이에 어떤 일이 있건 둘은 친구라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 뒤 얼라와 호드 간에 큰 충돌이 생기면 따로 약속하지 않아도 무법항에서 만나게 된다.



드레노어의 군주

-어둠의 문 전투에서 이바나 사망

-치오르가 사령관으로 진급



-로노미가 사령관으로 진급


군단



-이렇게(마이브와, 지난 제외) 직업연맹의 대표가 됨.

-마이브와, 로만, 로노미 셋은 사제들과 성기사들이 연합을 하면서 제대로 안면을 트고 친해졌다.

-마이브와는 불꽃가시에서 유일하게 죽음의 기사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던 인물이었지만 칠흑의 기사단이 희망의 빛 예배당을 뒤집어놓은 이후 죽음의 기사들을 다소 불편해하게 됨.

-살게라스가 봉인된 뒤 달라란에서 열린 축제에 놀러간 지난은 트롤 사냥꾼 아클란과 만나게 된다.(feat. 와저씨) 처음엔 능력있고 여유로워보이는 아클란을 보고 대단하다 여겨 뭔가 배워먹으려고 따라다니다가, 곧 연애감정으로 발전. 연인관계가 되는 데에 약간의 삐걱임은 있었으나 결국 평생 함께 하자는 약속을 맺고 함께 모험을 다니게 되었다.


-미레이느(나이트본) 호드 합류. 무난의 소개로 불꽃가시에도 들어왔다.



격전의 아제로스

-아르줄라(잔달라 트롤) 호드 합류.
-무난은 아제라이트를 캐는 건 위험하다는 마그니의 말에 동감해 어둠해안에서의 전투에 불참. 다만 언더시티가 무너지면 다음은 실버문일지도 모른다고 불안해하는 치오르의 설득에 불꽃가시에서 싸울 수 있는 길드원은 전원 로데론 전투에 참가했다.
-타토즈는 드레노어에서 친구를 잃고 부서진 해안에선 대족장을 잃고 아르거스에서 반평생을 함께 해온 랩터까지 잃어버리면서 허무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피의 관문 전투에서 거미박쥐에 잡혀가던 진젝을 구해준 뒤 첫눈에 뿅간 진젝에게 들이댐을 받고 있음.


-텔드랏실이 불탄 일로 카르요는 호드에 어마어마한 증오를 느끼고 있다.




그 외 뻘 설정

-호드 캐들 나이는 와그나>치오르≒트윅시>무난>록탄>지난≒마이브와.

-얼라이언스 캐들 나이는 로노미, 카르요>>>파르네쟈>>마우마>로만>티요≒삼카샤


-불꽃가시의 길드장은 치오르, 부길드장은 트윅시와 무난.

-푸른가지의 길드장은 로노미, 부길드장은 카르요 포함 네 명.


-마이브와의 동생은 나쟈. 동생이 생긴줄도 몰랐다가 드레노어 원정이 끝나고 돌아와보니 태어나있었음. 나중에 높은산 타우렌의 영향을 받아 드루이드로 성장할 예정.

-무난은 검은창트롤치고는 키와 덩치가 큰 편이고, 지난은 검은창 중에서도 덩치가 작은 편.

-마이브와는 성격이 워낙에 순하고 둥글어서 길드원들에게 막내취급받으며 귀여움받고 있다. 처음엔 그런 취급을 어색해했지만 점차 적응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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